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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이야기/선수

2002 월드컵 영웅 '한국의 굴리트' 유상철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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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레전드 선수이셨던 유상철 전 감독님께서 2021년 6월 7일에 췌장암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벌써 유상철 감독님이 우리 곁을 떠나시고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요.

 

10월 18일 유상철 감독님의 생일을 맞이하여 유상철 감독님의 일대기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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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1971년 10월 18일(출생)

~ 2021년 6월 7일(사망)

(향년 만 49세)

 

선수 경력 :

울산 현대 (1994~1998)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9~2000)

가시와 레이솔 (2001~2002)

울산 현대 (2002~200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03~2004)

울산 현대 (2005~2006)

 

감독 기록 :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2009~2011)

대전 시티즌 (2011~2012)

울산대학교 (2014~2017)

전남 드래곤즈 (2018)

인천 유나이티드 (2019)

 

 


울산 현대의 레전드

 

 

1994년 유상철 선수는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울산 현대에 입단했습니다.

 

유상철 선수는 뛰어난 체력, 위치 선정, 많은 활동량으로 오프 더 볼 플레이가 굉장히 뛰어났으며 몸싸움, 패스, 슈팅, 킥, 헤더, 태클, 수비 등 모든 부분에서 우수하여 골키퍼를 제외하고 어떠한 포지션에서도 제 역할을 했던 올라운더 선수였습니다.

 

이 처럼 유상철 선수는 울산 현대에서의 프로 데뷔는 윙백으로 했지만, 대표팀 데뷔는 센터백으로 역할을 소화했고, 모든 포지션을 완벽히 소화해내 한국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능형 멀티 플레이어 선수였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K리그 역사를 통틀어 베스트 11에 수비수(1994), 미드필더(1998), 공격수(2002)에 다 선정되기도 하며 엄청난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한 1998 시즌에는 최전방 공격수로 기용돼서 23경기 15골이라는 기록으로 리그 득점왕을 수상했습니다.

 

 

 

1999년 일본 J리그 진출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다시 울산 현대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전반기 8위였던 울산이 후반기에만 8연승을 하면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만약 성남이 포항에게 패했다면 역전 우승이 가능한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그 기간 동안 유상철 선수는 8경기 9골이라는 괴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다시 J리그로 이적하고 2005년에 울산 현대로 돌아와 두번째 리그 우승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선수단에서 이탈하고 부상이 더뎌지면서 결국 2006년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K리그 한정으로 울산 현대에서만 활동한 원클럽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유상철 전 감독님의 울산 현대 주요 기록

 

K리그 우승 2회 ( 1996, 2005 )

K리그 리그컵 우승 2회(1995, 1998)

K리그 베스트 11 (1994, 1998, 2002)

K리그 득점왕 (1998)

 

106경기 34골


 

 


J리그 진출

 

1999년 유상철 선수는 요코하마 마리노스로 이적하며 처음으로 해외 무대를 밟았습니다. 두 시즌 동안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1년엔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해 황선홍, 홍명보와 한국인 3인방의 한 축으로 활약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울산 현대로 돌아간 유상철 선수는 2003년 갑자스럽게 울산을 떠나 요코하마로 복귀했습니다.

이듬해 한국 선수 최초로 J리그에서 두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울산 현대로 이적했습니다.

 


유상철 전 감독님의 J리그 주요 기록

 

J리그 우승 2회 (2003, 2004)

 

80경기 30골 (요코하마)

33경기 14골 (가시와 레이솔)


 

 


한국 축구의 레전드

 

1994년 유상철 선수는 울산 현대에서 첫 프로무대에 입성하자마자 국가대표에 데뷔합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8강 한일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후 '한일전의 사나이'란 별명이 생겨났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멤버로 뽑힌 유상철 선수는 첫 월드컵 경험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지만 3차전 벨기에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팀의 패배를 막았습니다. 승은 올리지 못했지만 3연패를 당하지 않는 유상철 선수의 귀중한 동점골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히딩크 감독의 선택을 받고 2번째 월드컵에 출전하게 됩니다. 유상철 선수는 조별 예선 첫 경기 폴란드전부터 터키와의 3,4위전까지 한국 대표팀이 치른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특히 폴란드전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두 번째 골을 기록한 후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사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유상철 선수는 월드컵이 끝난 후 호나우두, 클로제, 홍명보 등과 함께 대회 올스타에 포함되며 세계 축구계에 이름을 떨쳤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8강에 올랐고, 2005년까지 국가대표 주장으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인해 결국 2006년 5월 은퇴식을 치르며 국가대표팀을 떠나게 됩니다. A매치 124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4번째 센츄리 클럽에 가입을 했습니다.

 

 


유상철 전 감독님의 국가대표 주요 기록

 

FIFA 세계 올스타 선정 (1998)

AFC 아시안컵 3위 (2000)

FIFA 월드컵 4위 (2002)

FIFA 월드컵 올스타 선정 (2002)

 

124경기 18골


 

 

 


이적설

 

유상철 선수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FC바르셀로나 이적설입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반할 감독은 네덜란드 몇몇 선수들을 영입하고자 했으나 불발되면서 유상철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적은 무산되었습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즉시 영입이 아니라 입단 테스트를 제안한 거여서 스스로 거부했다고 합니다. 또한 에이전트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 바르셀로나의 수석 코치였던 로날드 쿠만이 유상철 선수에게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날아라 슛돌이

 

현역 선수를 은퇴한 유상철 감독님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유소년 축구단 'FC 슛돌이'의 감독으로 활동합니다. 여기서 이강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이후 쭉 이강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유튜브 콘텐츠 '유비컨티뉴'에서 유상철 감독님은 '건강한 일주일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질문에" 강인이가 하고 있는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싶다"라고 말하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강인 선수가 출전하는 올림픽대표팀 친선경기를 앞두고 돌아가셔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2021년 6월 12일 가나와의 친선경기)

 

 


지도자 생활

 

2011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이끌어 1부 리그 잔류에도 성공하는 성적을 냈지만 재계약은 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 울산대학교 감독으로 지내다 2018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프로리그에 다시 복귀합니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한 시즌도 보내지 못하며 반 시즌만에 자진 사퇴로 쓸쓸히 퇴장합니다.

 

 

 

2019년 5월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되었습니다.

 

유상철 감독님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초반 좋지 않은 성적을 보이면 팀의 순위는 강등권까지 떨어졌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점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019년 10월 19일 성남을 1대0으로 잡으면 마침내 강등권에서 탈출했습니다. 경기 종료 휘슬 후 인천 선수들, 프런트 직원들이 모두 오열하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당시 이천수 전력강화실장마저 눈물을 흘렸으며, 선수들은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운 이유에 대해서 돌려 말하는 등 안 좋은 낌새가 감지되었습니다. 중계 화면에 유상철 감독님의 황달 증상을 앓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감독님의 건강 이상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 추측이 많아졌습니다.

 

 

건강상의 문제면 정말 좋지 않은 소식이기 때문에 팬들은 걱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모두 쉬쉬하며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11월 19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팬들은 2002년의 기적처럼, 유상철 감독님의 인생에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물론 J리그에서도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유상철 감독님이 현역 시절 몸담았던 요코하마, 가시와 레이솔에서 응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유상철 감독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팀을 1부 리그에 잔류시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유상철 감독님의 인천 유나이티드는 리그 마지막 경기인 경남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극적으로 1부 리그 잔류를 확정 짓게 됩니다. 또한 인천 서포터스의 "마지막 약속(쾌유)도 꼭 지켜 줘"라는 걸개가 여러 사람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인천 유나이티드를 잔류시킨 유상철 감독님은 치료를 위해 사임을 하셨습니다.

 

 


투병 생활

 

유상철 감독님은 투병하는 도중 2020년 2월 자신의 쾌유를 응원해준 요코하마 홈 경기장에 방문했고, TV 프로그램에서도 모습을 보이며 처음보다 건강을 많이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회복 중이라는 희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에게 약속했고 모두가 바라던 기적이 현실화되어가는가 생각될 정도로 많은 팬들은 놀라움과 회복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급격히 병세가 악화된 유상철 감독님은 통원치료 대신 병원에 입원해 집중적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갑작스럽게 향년 만 49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눈을 감으면서 2002년 4강 신화를 달성한 멤버 중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4강 주역으로서 감독님의 이른 별세는 많은 축구팬들과 국민들에게 슬픔과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에 많은 선수들, 팬들, 구단들, 축구계 내외에서도 추모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유상철 전 감독님의 일대기를 알아보았습니다.

 

 


영상 추천

유튜브 '터치플레이'에서 진행된 유상철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유비컨티뉴' 를 꼭 봐주세요

총 12부작입니다.

 

https://youtu.be/SRArbHISWac


 

부족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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